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사람 - 거듭남1편 - 김용의 선교사
    설교요약/김용의선교사 2018. 11. 9. 18:14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사람

    잠언 8

     

    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세상에는 법칙이 있습니다. 생명은 생명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생명이 아닌 것이 생명을 만날 수는 없습니다.

     

    목숨주고 준 복음은 목숨 걸고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만남의 비밀입니다. 여러분 전심은 전심으로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깐 주님 말씀하신대로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이 말은 하나님의 전심으로 사랑하는 이 사랑을 전심이 아니고는 받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부정한 그릇에다가 정결한 음식을 받으면 정결한 음식조차 더럽혀 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을 만나는 법칙은 아주 단호하고 분명합니다.



    영원한 말씀

    베드로전서 1

     

    24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사람은 풀과 같고 그의 영광은 풀의 꽃과 같아서 반드시 마르고 시들어 진다 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그냥 지나가는 건지 이것이 영원한 건지 이게 본질인지 주변인지 이것을 구분하는 것도 지혜입니다. 인생 헛 사는 것도 잠깐입니다.

     

    이 땅에 오고 간다고 모두가 사실이 아니며 헛구름 잡고 그리고 헛발 딛어서 인생 통째로 망하는 것 잠깐입니다.

     

    진리에 눈을 번쩍 뜨고 심령의 심지를 돋우어서 주의 말씀은 내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그 진리에 목숨 걸고 살아가는 지혜로 하는 선택과 믿음이 여러분의 것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주목

    주님께서 사용하신 사람에게 주목하면 안 됩니다. 사람을 사용하시는 주님을 주목해야 합니다.

     

    어차피 인간이라는 거 실수 많이 있게 마련이고 아무리 뛰어나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주님 손에 안 붙들리면 위험천만합니다. 삼손처럼 머리 깎이면 완전 아무것도 아닌 게 될 수 있단 말입니다.

     

    사람 주님의 종에 너무 주목하지 마십시오.

     

    성령이 우리 영혼 안에 하고 싶은 말씀을 마음에 눈을 밝히고 귀를 열어서 듣고자 하면 주님께서는 나를 찾고 찾으면 만나리라 하고 말씀하신 주님은 어린아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우리 심령에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천만마디 사람의 말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한마디라도 성령이 사용하시면 인생 뒤집어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조화와 질서의 하나님

    주님은 혼돈과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는 질서가 있고 조화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애매모호하거나 눈감고 덤비듯이 정신사납지 않습니다.

     

    주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시고 천지를 완벽한 조화와 질서를 가지시고 운영하시는 그런 주님이시기에 그분의 성품과 반대가 되는 일을 안 하십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에는 의심 없이 사과가 맺히면 사과인줄 아시면 됩니다. 나무마다 특성을 가지고 창조하셨기 때문에 개는 태어나면서 연습을 안 해도 개짓을 하고 주님은 만물을 그 특성에 맞게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은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놓으시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말씀가운데 우리에게 행하지 못 할일을 말씀하시는 이상한 하나님은 없습니다.

     

    그렇게 살 수 없는 것을 명령해놓으시고 너 왜 그렇게 못 사냐고 트집 잡아 벌을 주시고 지옥에 보내는 하나님 같으면 그 하나님은 이상하고 괴이한 하나님 아닙니까?

     

    그런 하나님은 존재적으로 불가능하고 그런 하나님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십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명령을 하셨을 때는 감당할만한 힘을 주십니다. 미리 예비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같은 사람

    그런데 나무 중에 말입니다. 나무 중에 우리를 속이는 것이 있죠. 크리스마스 트리 같은 경우입니다.

     

    크리스마스 화려한 장식을 해놓으면 철에 맞는 트리 너무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철지난 트리 보셨나요?

     

    철이 한참 지나 그 화려한 장식을 때고 나면 비썩 말라죽은 나무한그루만 남게 됩니다.

     

    인생 나라고 생각 했던 내가 성공했던 회장님 사장님 교수님 총장님 그리고 선생님 같다 붙여 논 것이 내가 나에게서 나온 줄 알고 그 화려하게 치장된 나를 가지고 위안하다가 비썩 말라죽은 죽은 초라한 나무로 들어날 것인지를 생각해봐야합니다



    뜻대로 행하는 자

    마태복음 7

     

    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세상에 심판 때에 적은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있을 거라고 말씀하시면서 핵심은 딱 하나입니다.

     

    기독교는 염불이 아닙니다. 정신통일 더욱 아닙니다. 기독교는 종교적 관념이나 철학적 개념 따위가 아닙니다. 살아계신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생명인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가 만들어낸 조작한 신이 아니라 그분은 우리가 믿던 믿지 않던 영원히 살아서 자존하시는 스스로 야훼의 하나님 스스로 자족하시는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 이십니다.

     

    역사의 의지를 가지신 역사의 참 주인이시며 심판 주 인 것입니다



    나무의 열매

    나무는 그 열매를 보아 알 듯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정말 생명 있는 그리스도인이냐 누구도 숨길 수 없고 그리고 혼돈될 수 없는 가정 확실한 표식하나가 있습니다.

     

    너는 진짜다 가짜다 누구도 그럴 권한을 가질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판단하실 일이구요.

     

    그런데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알아야 하고 내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표식이 관연 있느냐? 그중에 가장 뚜렷한 증거를 이 사람이 주님에게 속한 사람인가? 하늘 백성인가? 정말 구원받은 주님의 백성인가? 정말 거듭난 사람인가? 이것을 알게 해주는 가장 단순하고도 진리인 것은

     

    나무가 열매를 보아 알 듯이 진정한 생명의 크리스찬을 알게 하는 가장 중요한 누구 판단할 필요도 없이 자기 스스로가 알고 주님이 아는 아주 확실한 표식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4

     

    4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요한복음 10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길게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아주 간략하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에게 속하였는가? 결정적인 다른 증거는 없습니다.

     

    그 사람 누구 따라가는지 보면 압니다.

     

    그리고 반드시 선택한 결과를 책임져야한다는 것이 인생을 농담 삼아 살수 없게 하는 선택하고 걸어 가야하는 그런 두려운 일인 것입니다.

     

    저는 별생각안하고 따라갔는데요.

     

    무슨 생각을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선택한 그 길에 대한 결과는 반드시 자기스스로 책임을 져야하는 것입니다.



    복음 듣고 행하는 자

    로마서 10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복음은 매일 듣고 감동은 받으면서 복음은 너무 좋은 거야 이러면서 복음에는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아니하고 복음에 목숨 걸고 한 번도 참여해보지 않은 사람 믿음으로 화합치 아니한 자는 복음의 유익을 절대로 누릴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나를 움직일 수 없는 믿음은 결코 믿음이 아니다.

     

    히브리서 11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복음서를 보면 오순절 날이 임하고 복음이 완성된 이후에는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역사로 하루에 5000명씩 회개하고 돌아오는 일이 있었지만 예수님 당시 십자가에 못 박아 돌아가실 때 까지 그토록 열광하고 예수님 앞에 그냥 떼를 지어 나아왔던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따라간 것은 아니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어떤 사람은 병 고치러 나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종교적 위안을 얻으려 나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정신적 치유를 위해서 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빵을 얻어먹으려 왔고 어떤 사람은 문제해결 하려고 왔고 어떤 사람은 호기심에 왔고 어떤 사람은 초월적인 능력을 경험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에 만족을 얻고 싶고 어떤 사람은 세속적인 탐욕을 얻고 싶어서 수많은 목적과 동기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예수님께 어떤 동기를 가지고 나와도 그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왜 아는 것이 그것밖에 없으니깐 그러나 예수님의 진리 앞에 서서 그 들려주신 복음을 들으면 그러면 거기에 대한 태도 결정이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선택이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데 대다수 들어난 일은 사람들이 그렇게 열광을 하며 예수님 앞에 나아왔지만 그들은 예수님 그자신이 아닌 예수님 손에서 떨어지는 축복 보따리 예수님 손에서 나오는 기적 예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 그분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같은 뜻으로 동행하는

    여러분 만약 정약 결혼한 사람이 남편 자체가 관심이 없고 남편이 가진 재산이나 지휘에만 관심이 있어서 들어온 여자인지 알았더라면 그 얼마나 배신을 느끼겠습니까?

     

    저놈이 내게는 관심이 없고 내게 있는 무엇인가 관심이 있어서 온 놈 이구나 그놈은 사기꾼 놈이에요.

     

    그곳에는 진정한 인간관계가 맺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아모스 33절에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이사야 2913절을 보시면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난 너에게 원하는 것이 제사 의식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고 너 온 마음 다한 사랑을 원해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은 너희가 가져오는 대단한 헌금보따리 재물 이런 것에 관심 있는 것이 아니야

     

    난 너희가 나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원한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받으시는 제사보다 의식보다 예물보다 정말 원하시는 주님의 소원이 바로 그것이라고 구약 성경 내내 마음이 떠난 주님의 백성들에게 가슴 아프게 선지자를 통해 책망하시고 돌이키도록 말씀하셨던 주님의 부탁 이였습니다.



    진짜 복음에 화를 내는 사람들

    자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많은 이들이 그렇게 호기심을 가지고 기적도 보고 주님의 주옥같은 말씀도 듣고 감동도 받았는데 정작 예수님을 따르는데 까지 인생을 걸고 목숨을 걸고 순종으로 나서는 사람은 그렇게도 희박했습니다.

     

    너에게 참된 보물을 주러 왔다 그러면 우리 같으면 빵 한 쪼가리 먹으러 왔는데 빵이 아니라 내 인생자체를 구원해주시겠다 그러면 그냥 감격하고 엎어져서 이게 왠일입니까? 하고 겸손하게 받아야 맞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희한한 것은 주님이 진짜 복음을 말하시면 화를 냅니다.

     

    십자가의 본질이 전해지면 둘로 쫙 갈라집니다. 주님의 본격적인 복음에 직면하고 십자가의 복음 앞에 서면 절대 내면을 숨길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딱 반응이 갈라집니다.

     

    고린도전서1

    18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강단에서 명료하게 분명하게 십자가의 복음의 메시지가 정확하게 전달이 되면 복음이 희미해서 헷갈리고 반응한 것이 아니라 복음이 명확하게 전해지면 사람들의 속 내면의 영혼의 모습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악을 쓰고 덤벼들고 자신의 악한 본성을 드러내던지 아니면 완전히 복음이 원하는 앞에 납작 엎어져서 나의 치유 나의 하나님 인생 걸고 아멘 하던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복음은 절대 중간 지대가 없습니다.



    두루뭉술한 복음을 전하는 자

    이게 두려우니 전하는 사람도 두루뭉술하게 듣는 사람도 그 믿는 얘기를 심각하게 합니까?”

     

    이러기를 원하지 정색을 띠고 복음을 바로 전할 용기가 안 납니다.

     

    천국이 실제가 아니고 주님이 실제가 아니면 이것 할 사람 별로 없습니다.

     

    사람의 죄인 된 본성은요 십자가의 복음은 절대 예수님을 따르는 생명의 복음은 누구에게나 다 부담입니다.

     

    그러나 예수십자가의 공로 없이는 누구도 예외 없습니다.

     

    요한복음 1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십자가 복음으로의 초대

    이처럼 사랑하사 당신의 독생자까지 십자가에 내어준 완전한 사랑으로 너를 초대한다.

     

    믿기만 하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이런 농도의 사랑을 감히 누가 할 수 있으며 누가 이것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 엄청난 초대를 왜 사람들이 그 보다 못한 일에도 목숨을 걸면서

    왜 이 초청을 예수그리스도의 초정을 받아드리지 않고 따르려고는 하지만 따를 수가 없는가?

     

    이 이유를 간단하게 생각해보면 첫째는 무관심하고 두 번째는 아무리 애를 써도 인간의 힘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 못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것을 사랑하지 말라

    요한일서 2

     

    15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세상을 사랑하면서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동 서가 직선상에 있어 서로 만날 수 가 없듯이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사랑한다는 말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내 삶의 목적 이런 것들이 얼마나 풍성한 삶이 기다리고 있는지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관심이 없는 겁니다.

     

    이 세상에 짤막한 재미 그 끈적끈적한 재미를 놓기 어렵다는 것은 이거 말고는 무슨 재미가 있겠어? 술 담배 끊고 어떻게 살겠어? 그거 끊고 무슨 재미로 살겠어?

    그 술 담배 하는 만큼 성경에 대해서 진리에 대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신경 써 왔더라면 어떤 것도 갑자기 중독 안 됩니다.

     

    이 세상에 것에 중독되었다는 것은 그것에 엄청난 시간을 쏟았다는 것입니다.

     

    드라마 중독되는 것만큼만 성경 읽을 시간 없는데 기도할 시간은 없는데 그나마 모르는 사람이면 모른다고 하지만 십자가를 보면서 한 방울 흘릴 눈물이 없으면서 싸구려 삼류 드라마보고는 은혜를 받고 흘릴 눈물 있습니까?

     

    예수님 만날 날에 그 눈 뜨고 어떻게 주님의 영광을 볼 겁니까?

     

    예수님을 믿는 이 길을 선택하기 위해서 역사상 여러분이 사셨던 1900~2000년 한 세기에 안에 죽은 순교자 수가 1800년간 순교자의 수보다 더 많다 이 말입니다.



    독수리의 죽음

    나야가라 폭포에서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그게 뭐냐면 해빙기가 되면 말이죠. 그 얼었던 상류에서 나이가라 계곡으로 막 처박는 강물에 큰 얼음덩어리가 둥둥 떠내려 온데요

     

    그런데 희한한 것은 하늘의 왕자라고 하는 독수리가 폭포에 휘말려 죽는다는 것입니다.

     

    아니 양이 떨어져 죽었다면 이해가 되지만 하늘의 왕자인 독수리가 어디 죽을 때가 없어서 폭포에서 떨어져 죽느냐 이것입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그런데 그게 종종 있답니다. 무슨 일인가? 봤더니 상류에서 해빙기에 얼음덩어리가 내려오잖아요. 겨울에 눈이 내리고 그게 녹다가 얼다가 뭉텅뭉텅 뭉쳐서 떠내려 오는데 강물에서 천천히 내려오다가 나야가라 폭포 보셨죠? 그 폭포의 높이가 30층 아파트 높이정도 됩니다.

     

    이런 폭포에서 독수리가 왜 죽나 살펴봤더니 짐승들의 시체가 눈에 쌓였다가 녹았다가 그러면서 얼음에 잠겨져 있는 겁니다.

     

    이것을 멀리 있던 독수리가 본 것입니다. 아주 프레쉬한 고기입니다. 얼음에 냉동되어 있으니까요.

     

    독수리는 얼음위에 발톱을 박고 그리고 그 날카로운 부리로 그 죽자마자 얼음에 냉동된 아주 싱싱한 고기를 있는 대로 하나 콱 찍어서 꿀꺽 먹기를 반복하는데 고기를 먹는 동안에 얼음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고 이게 계속 폭포를 향해 흘러가는 겁니다.

     

    그래도 폭포의 소리가 우르릉 거려도 독수리는 그까짓 것은 코웃음 치는 겁니다. 내가 하늘의 왕자야 그래서 스릴을 즐기느라고 거의 폭포 난간까지 다가올 때까지 한 입 더 탐욕으로 가득찬 독수리는 우르르 꺾어지려고 할 때 보란 듯이 얼음이 기울어진 순간에 박차 오르려고 날개를 쳐올리며 날아오르려고 하는데

     

    아뿔싸 그 기가 막힌 탐욕으로 고기에 정신팔려있는 동안 발톱이 죽은 시체와 얼음과 함께 박혀있는 겁니다. 그 부분이 살짝 얼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빼야겠는데 이것이 안 빼지는 겁니다. 그럴 시간도 없이 폭포는 그대로 조롱하고 비웃듯 그대로 추락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분명히 창공 그대로 있고 날개치고 올라갈만한 날개 힘이 남아있는데 썩은 고기에 박아놓은 독수리의 탐욕이 발톱에 꽉 찍혀야지고 그대로 붙들린 채로 그냥 폭포에 추락해서 함께 죽는 독수리의 시체가 종종나타 난다는 것입니다


Designed by Tistory.